시편 37:3-6
삼 년 전 가족사진을 찍을 때였습니다. 둘째 아들이 소위 말하는 '어글리 티셔츠'를 소품으로 가져왔습니다. 나는 태어나서 그렇게 촌스러운 스웨터를 본 일이 없었습니다. 아들은 그것을 입고 가족사진을 찍자는 것이었습니다. 보통은 가족 모두 정장을 입고 약간은 가식적인 웃음을 지으면서 가족사진을 찍는 것이 공식인데, 나는 영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설상가상으로 '괴상한' 표정을 지으면서 사진을 찍자는 것이었습니다. 저와 아내는 결국 '그 괴상한' 표정 연출은 실패하고, 두 아들은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물론 온 가족은 한바탕 배꼽을 잡으며 웃었었지요. 그런데 몇 해가 지난 지금 그 사진이 기억에 오래 남아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진 속에는 오랫동안 세월에 묻혀있었던 아내의 환한 웃음이 있었고, 한편 반갑고 한편 미안한 느낌 때문이었습니다.
새해가 시작될 때는 각 기업이나 단체들이 나름대로 미래 예측을 제시합니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쎈터의 연구팀도 몇 가지 키워드를 제시했는데 그중에 '컨셉팅'이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제는 제품의 장점을 알리는 '마케팅'보다는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컨셉팅'이 필요하고, 미래의 소비자들은 제품의 완성도가 좀 떨어지더라도 본인의 컨셉에 맞으면 구매한다는 요지입니다. 몇 해 전 가족사진의 경험에 비추어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약간은 이해가 되었습니다. 신세대에게 '컨셉'은 잠자는 듯한 삶에 행복한 자극을 주어 맥박을 힘차게 뛰게 만드는 묘약이 될 수 있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책을 보니 최근 중년 남성들을 묘사하기를 '정신없이 달려와 보니 어느 순간 사회적 지위가 높아졌고, 책임감도 무거워져 버린 남자들, 하지만 그 사회적 의무감과 압박감 때문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잃어버린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왜 우리는 행복하기 힘들고, 인생이 재미가 없다고 느껴질까요. 신세대는 '컨셉'에 열광하고 중년은 갑옷 같은 현실에서 자신만의 '행복 리추얼'을 찾으라는 말에 왜 그리 격하게 공감하는 걸까요.
우리 안에는 두 가지 자아가 있습니다.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자아와 사회적 자아입니다. 진정한 자아는 방향과 같고, 사회적 자아는 지도와 같습니다. 사회적 자아와 진정한 자아 사이에는 긴장이 있습니다. 자신만의 방향이 분명치 않다면, 마치 타인의 인생을 대신 사는 듯, 필연적으로 불행과 불만족을 경험하게 됩니다.
'컨셉'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꾸며보는 사람들, 무료하고 재미없는 삶으로부터 '자신만의 행복찾기'에 분주한 사람들, 아마도 같은 문제가 아닐까요. 진정한 자아와 사회적 자아가 바른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방향과 인생 지도가 분명치 않을 때 감성은 허무해지고 인생은 무료해집니다.
성경은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시편37:1-6)"고 말씀합니다. 성경이 주는 세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방향입니다.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변하지 않는 방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물고기가 물을 의지하듯, 새가 공기를 의지하듯,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둘째, 원칙입니다. "선을 행하라"고 합니다.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자명한 원칙입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선의 숭고한 뜻을 실천하면서 사람은 의미와 보람을 찾습니다. 그것을 잃을 때 자기 존엄성을 잃고 방황하게 됩니다.
셋째, 신뢰성입니다.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으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일에 신뢰받을 만해야 합니다. 사회 속에서 칭찬을 받고 덕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영향력이며 빛과 소금의 의미입니다.
존 파이퍼 목사는 '그리스도인들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을 추구한다'고 했습니다. 올바른 방향과 지도를 하나님 안에서 찾는다면, 거룩함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발견할 것입니다. 밤이 깊을수록 정북을 알려주는 별은 선명하게 빛납니다. 미로 같은 인생 지도를 놓고도 방향이 분명하면 자유함이 있습니다. 그 안에서 가슴 벅찬 내일을 기다리며 맥박은 힘차게 뛰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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