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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햇볓이 눈부시던 어느 ,  계곡의 시냇물이 청아한 소리를 내며 흘러 가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심술쟁이 할머니가 살았는데 시냇물의 아름다운 모습에 심술이 났습니다. 그녀는 개울 가운데 댐을 만들어 시냇물이 흘러가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시냇물은 화가 났습니다. ‘할머니, 내가 잘못했다고 이러시는 거예요?” 대답대신 심술쟁이 할머니는 말했습니다. “문제를 있는 방법은 안에 있다.” 그리고 특유의 비웃음을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내가 잘못했다고 나에게 이럴까너무나 억울했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되었습니다.물이 썩어 마실 없게 되자 모든 동물들은 떠났고 주변 식물들도 점점 시들어가면서 죽음의 골짜기로 변했습니다. 그런데 심술쟁이 할머니는 모습을 즐거워하며 춤추며 조롱했습니다.

이제는 죽음의 문턱에서 심술쟁이 할머니의 모습도 조롱소리도 점점 희미해지고 있을 , 시냇물은 문득 심술쟁이 할머니가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렇게 사는 마음은 오죽할까. 모습이 불쌍하지 아니한가.” 오히려 기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들게 되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사랑의 새로운 차원 배우게 것이지요.

바로 때였습니다. 견고하게 버티고 있던 댐이 갑자기 힘없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댐을 무너뜨리는 열쇠는 사랑이었던 겁니다. 댐은 길을 열어주자 시냇물은 다시 힘차게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시냇물의 생명은 사랑으로 더욱 풍성해지게 되었습니다.

부활절이 가까와지면서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의 의미를 깊이 묵상하는 시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고대 로마의 가장 처참한 극형이었습니다. 수치와 고통은 이루 말할 없었기 때문에 특별히 반역자들을 본보기로 처형하는 공포정치의 상징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인간 구원에 굳이 방법을 선택하셨으며 성경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사람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했을까요.

앞의 동화가 말해주듯, 십자가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사랑 완전한 모습이며 값없이 주는 하나님의 사랑 증거입니다. 사회를 건강하게 하고 역사에 변화를 일으키는 진정한 가치지요..

세상에 평화를 이루는 방법은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십자가의 공포, 폭력으로 만드는 힘의 평화와, 둘째는 십자가의 사랑, 희생과 목숨을 내어줌으로 이루는 하나님의 평화입니다.

힘으로 이루는평화는 건강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진정한 가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입니다. 십자가로 이루는 평화는 하나님의 평화입니다. 세상은 미련하다고 조롱하면서도 가치와 영향력 앞에 존경과 가치를 돌려줍니다. “인자의 것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폭력의 평화는 언젠가 힘을 잃습니다. 십자가의 평화는 세상의 종말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1919년은 비폭력 무저항 시민운동 위대한 해였습니다. 일제 강점기 한반도에서는 삼일 만세운동이 일어났고 중국에서는 공산치하에서 5.4시민운동이, 인도에서는 간디의 비폭력 독립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싸움은 이기기 위해서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지는 싸움도 합니다. 잔인한 폭력 앞에서 의연히 비폭력으로 일어서는 힘은 십자가의 갖고 있는 능력입니다. 당시 한국 교회가 갖고 있었으며 세계에 영향과 용기를 주었던 십자가의 대한 강한 믿음이었습니다.

 십자가의 평화그것이 교회가 세상을 마주하는 방법입니다. 교회가 영향력을 상실하는 이유는 돈과 정치에 기초한 폭력에 유혹되기 때문입니다.

당장은 미련해보이고 억울하다 생각이 들더라도 십자가의 능력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평강과 기쁨을 알게 것이며 개인의 삶에는 변화를 경험하게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