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3:17-21
조니 에릭슨은 수영선수였습니다. 다이빙 사고로 전신이 마비된 후, 인생의 남은 시간을 고통 가운데 보내다가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낮은 몸’에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부활한 다음에 입을 몸이 얼마나 큰 소망인지를 깨닫고 이렇게 간증합니다.
“불구가 된 이 몸 어딘가에는 앞으로 내가 변화될 모습을 담은 씨앗이 숨어 있습니다. 근위축증으로 쓸모 없어진 다리에 찬란하게 부활한 몸은 ‘나’를 더 멋진 존재로 만들어 줄 겁니다. 하늘에 계신 예수님의 형상을 그대로 지닌,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일 것입니다.”
봄에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농부가 “씨앗이 땅에 묻혀 썩을 것”을 슬퍼하지는 않습니다. 새싹이 움틀 때 씨를 보호하고 있었던 씨껍질이 썩어 부드러워지면서 새싹길을 열어주고, 씨의 몸은 썩어 새싹의 초기 양분을 공급하는 것이 자연이치이기 때문입니다. 씨앗 자신이 가진 더 큰 가치라면, 그 안에 있는 싹이 움트고 더욱 의미있는 모습으로 변할 때 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도 이와 비슷합니다. 구도(求道)를 위한 그리스도인의 인내와 노력은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으로부터 시작하여, 그 결실 또한 하나님의 도움으로부터 옵니다(빌1:6). 적어도 하나님의 구원과 진리에 관한 한 인간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진리는 예수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요14:6)
죽은 씨앗으로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씨앗 안에 생명이 있어야합니다. 예수로 시작되지 않으면 생명은 시작되지 않습니다. 씨앗의 모양이 어떠하든, 씨앗 안에 생명이 있다면 싹트고 열매를 맺을겁니다. 마찬가지 이치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의 더 큰 의미를 부활과 영생에 두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어떠하며 소유한 것이 무엇이건 간에 나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을 때는 그 모든 것이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빌3:7-9). 반면에 현재 나의 모습이 어떠하든 간에 우리의 가치는 현재의 삶에 담긴 미래 생명, 즉 ‘부활의 몸’에 있습니다.
이것을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거기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립니다. 그는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실 것입니다(빌3:20-21)”.
우리는 모두 ‘낮은 몸’안에 하나님의 ‘영광의 형체’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로 시작된 생명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가 됩니다. 그것이 성도의 영광이며 ‘낮은 몸에 두신 하나님의 영광의 형체’가 갖는 가치입니다. 죽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부활의 영광입니다.
우리의 ‘낮은 몸’이란 이렇습니다. 현직 목사로 이번 주에 제가 들은 주변 소식이고 또한 지금 기도하고 있는 일들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한 사모님은 폐와 뇌암 치료 과정을 막 끝냈는데 뇌에 또 다른 암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평정을 잃지 않고 하늘 나라의 소망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한 젊은 집사님은 위암 절제술로 위의 70%를 적출하고 후유증으로 고생하면서 자신 인생의 신앙적 의미를 문학으로 승화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한 후배 목회자의 사모님은 유방암 수술후 항암치료 과정 중에 육체가 쇠약해져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남편 목회에 힘이 되어주려고 온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열거하지 못한 많은 교우들의 이야기들가 주변에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지쳤고, 기진맥진합니다. 바울은 이 몸을 장막으로 표현하면서 ‘이 장막에서 신음한다’고 썼습니다(고후5:2). 우리의 장막은, ‘낮은 몸’은 이전 처럼 튼튼하지 않습니다. 아니면 처음부터 건강하지 못한 ‘장막’, 즉 장애의 몸으로 태어난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성경은 그렇게 약속합니다. “그 분은 우리의 죽을 몸을 변화시키셔서, 그분의 영광스런 몸과 같이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빌3:21, 쉬운성경).” 말씀이 소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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