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35:10

인공지능과 로봇 등의 수단으로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 넘고자하는 ‘포스트 휴먼’ 시대에 우리는 이미 진입했습니다. 정보통신 기술의 융합으로 대변되는 신혁명시대는 물리적 세계와 디지털 세계를 접목하면서 인간 수명의 무한 연장 가능성을 열어 놓았습니다.

‘포스트 휴먼’ 시대의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요. 어느 공상과학 영화에서 처럼 우리의

정신을 기계의 몸에 업로드하여 죽지 않는 몸을 갖게 된다면, 죽음이 필연이 아닌 선택이 됩니다. 생명은 필요에 의해 탄생하여 소멸해가는 시대, 그 때의 인류는 과연 지금의 인류와 같은 것일까요. ‘포스트 휴먼’ 시대에 들어가는 우리의 질문입니다.

미래에 대한 많은 연구들이 있지만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라는 저서에서 인류의 역사를 넷으로 나누어 인지혁명, 농업혁명, 인류의 통합, 과학혁명의 순으로 소개합니다. 인지혁명으로 먹이사슬의 최고 포식자가 된 ‘호모 사피엔스(인류)’는 농업혁명으로 집단화했고, 화폐, 제국, 종교의 네트워크로 인류통합을 이루었으며, 과학혁명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룬 인류는 이제 생명공학혁명으로 스스로의 한계를 초월하는 중입니다. 그 목표는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인데, 그것은 생명과 창조라는 하나님의 권능에 도전하는 인간의 탐욕일 뿐이라고 그는 지적합니다. 그에 따르면, 인류는 가는 곳마다 생태계를 파괴시켰을 뿐, 문명발전의 결과는 부끄러움이며, 그 끝에서 인류는 자신의 종말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스스로 만든 파멸의 덫을 향해 멈출줄 모르고 달려가는 인류의 죄성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은 창조하신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어두운 때에도 희망을 주시는 그 창조주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욥기 35:10, 새번역)” 이것을 다른 성경에서는 ‘밤중에 노래하게 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최첨단 과학과 생명공학혁명으로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포스트 휴먼’ 시대는 영적인 깊은 밤이 될 겁니다. 무신론을 넘어 악의적인 반신론이 넘쳐날 것입니다. 최고의 과학기술과 부요, 500세 건강이 더 이상 그리스도인에게 아무런 가치가 되지 못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준엄한 질문과 마주합니다.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15:19)’,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마5:11-12)’

하나님의 권위에 악의적으로 도전하고, ‘우리를 욕하고 박해하고 악한 말을 할 때에’ 성도가 가진 신앙의 기쁨과 영적 즐거움의 근거는 어디 있을까요?

먼저 기쁨을 바르게 규정해야합니다. 우리는 무엇때문에 슬프고 무엇으로 기뻐합니까. 안개처럼 없어질 세상적 행복과 쾌락이 아니라면 그것은 영원한 가치를 가진 것이라야 하겠지요. 둘째 고난중에라도 천국의 소망을 즐깁니다. 하나님은 성도에게 ‘깊은 밤에 부를 노래’를 주십니다. 박해와 고난 중에라도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갖고 그것을 즐길 수 있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선’을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의 선’이란 ‘하나님의 창조 계획에 합당한 것’입니다. 인생의 정의와 진정한 가치는 하나님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악한 죄성이 해결되지 않고 폭력과 타락으로 가득한 모습으로 영원히 산다는 것은 그 자체가 영원한 형벌이 됩니다. ‘창조하신 하나님께로 절대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자의적으로 하나님을 거부하고 악을 즐겨하면서 파멸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성도는, 지금 나의 생명에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있고, 지금 나의 인생에 ‘하나님의 선’이 있음을 믿고 그 의미를 즐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