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21-26
사도행전 1장은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이 초대교회의 오순절로 이어지는 매우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승천 이후 교회는 기도의 자리에 돌아와 ‘그 약속하신 바 성령’을 기다리게 됩니다.
당시 그 자리에 모였던 약 백이십 명의 무리는 새로이 시작되는 교회의 가장 중요한 그룹이었습니다. 그들이 가장 먼저 했던 일은 가롯 유다의 빈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선택하여 12명의
사도 조직을 보완하는 일이었습니다. 사도를 세울 때 그 자격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부활을 증거할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장을 통해 본다면 ‘부활을 증거할 사람’은 네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부활을 본 사람, 부활 안에 있는 사람, 부활의 자유가 있는 사람, 그리고 부활이 배어 나오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승천과 성령 강림으로 이어지는 사도행전 1장 전반부에서 저자
누가는 비교적 자세하게 주님의 부활과 승천에 관해 기술하면서 ‘보다’와
깊이 관련된 네 단어를 사용합니다. 주님은 부활하신 자신을 확실한 많은 증거로 ‘나타내셨고 보이셨다’고 했고, 그
마지막 승천의 모습을 제자들은 ‘그들 자신의 눈으로 자세히 보았다’고
했습니다.
부활의 증인은 첫째로 ‘부활을 본 사람’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12제자를
선택하셔서 함께 있게 하심은(막3:14) 그들이 ‘하나님을 알고 믿으며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성경을 증거합니다(사43:10). 사도행전 1장에서
제시된 ‘사도의 자격’으로서 ‘부활을 본 사람’이란 표현은 상징적입니다. 사도는 물리적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확인하고 본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요한일서
1장 1절에서 사도 요한의 증거처럼 그들에게 주님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였습니다.
그렇지만 ‘부활을 본 사람’의
물리적 의미는 사도행전 2장에서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전 우주적으로 확장됩니다. 우리 안에 ‘예수를 알게 하시고 믿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는 성령께서
오실 때’ 모든 신자들은 ‘증인’이 되고(행1:8) 넓은
의미의 ‘사도’가 됩니다.
이 때 모든 신자들은 성령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고후5:17) ‘부활을 본 사람’이 되며 모두가 ‘부활 안에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들에게는 ‘부활의 자유’가
주어집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셨으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죽음의
원리에 묶여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목적없이 방황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무진리와 무질서로부터 우리는 ‘지향할 본향과 목적’이 생겼습니다. 목적지가 없는 사람은 길 또한 없으며 그들은 단지
떠돌 뿐이겠지요. 예수라는 인생의 진리와 좌표는 세상의 방황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성경은 예수와 함께 하는 성도의 삶을 그런 과정으로 표현합니다(엡2:1-7).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살리시고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심은 그
은혜의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부활의 생명과 자유는 억지로 실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도의 삶에서 배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증인’의 의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성도의 신비한 연합은 구원의 핵심입니다. 주님께서
동행하신다는 약속은 단순히 이 세상의 삶에서 동행하신다는 윤리적인 의미만이 아닙니다. 주님과 함께 죽음으로부터
일어나 우리는 영생으로 이어지는 영원한 여행을 시작하며 죽어도 주님과 함께 죽고 살아도 주님과 함께 사는 생명의 본질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부활은 성령 안에서 모든 성도의 삶에서 영속성을 갖습니다.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는’ 성도의 헌신에서 부활은 천국까지 이어지고 그 승리는 오늘 시작되어 우리의 삶에서 배어 나오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 안에 오신 성령과 함께 부활의 생명 또한 배어 나오는, 은혜로
풍성한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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