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9:11-20
흥미로운 가상화보의 내용입니다. ‘2030년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팬데믹이 선언됩니다. 주가는 급락했고, 거리는 비었습니다. 사람들의 손목에는 국민 건강을 관리해주는 헬스링이 채워져 있고, 전염병이 발생하면 사람들에게 경고를 보냅니다. ‘귀하가 방문한 건물에서 감염자가 발생했습니다. 귀하는 밀접 접촉자입니다.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고, 가까운 진료소를 찾아 검사를 받으십시오.’ 인공지능이 관리하는 무인진료소에 도착하여 감염 선별 절차를 끝내면 문 앞에 도착한 자율주행 셔틀을 타고 격리소로 이동합니다. 모든 것이 무인 시스템으로 처리됩니다(JTBC, 팬데믹 이후의 세계 A.C.10).’
2000년대 들어서
미국 사회의 중요한 변화를 일으킨 사건을 말한다면, 2001년 9월
11일 테러, 2008년 경제위기,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을
들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사건 이후 중요한 변화들은 국민 스스로 자신의 자유를 어느 정도 국가에 넘겨준
것입니다. 911테러 이후 ‘보이지 않는 적, 테러로부터의 안전’을 위해 국민의 자유는 어느 정도 유보되었고, 2008년 경제위기 이후 국민들의 시장경제는 ‘안전을 위한’ 국가의 규제를 수용하게 되었으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국민들은 자신들의 건강과 생명의 안전을 국가의 통제에 맡기게 되었습니다.
국제사회는 빠르게 지구촌이 되어갔고, 대부분의 기업들이 다국적 기업의 기초를 다지고 전세계의 분업화가 진행되고 있던 어느 시기에, 테러, 경제안보, 전염병
등으로 개인의 자유는 유보되고, 국가주의 혹은 패권주의가 다시 권력을 잡은 모양새입니다. 큰 정부와 작은 정부, 오래된 논쟁입니다. 큰 정부의 끝에는 독재정부가, 작은 정부의 끝에는 포퓰리즘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 어디에도 국민의 인권과 자유를 보장하는 안전지대는 없습니다.
신자유주의 흐름 끝에 코로나가 왔습니다. 팬데믹 기간 중 큰 정부의 힘을 만끽한 권력자들을 중심으로 신국가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시대 기업과 노동자들이 땀으로 일구어 놓았던 기술과 번영이 어느 순간 권력자들의 무기로 바뀌었습니다. 영토분쟁과 전쟁, 기술안보와 경제제재, 팬데믹과 백신국수주의, 국가부채와 물가상승, 등 전방위적 시대흐름의 변화는 미래 예측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21세기는 초지능, 초연결 시대를 기반으로 웹3.0으로 이름하는 탈중앙화의 돌풍 속으로
급하게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권력의 중앙집중 시도는 제국주의의 마지막 불꽃놀이처럼 오래가지는 않겠지만
당분간 중앙권력과 탈중앙화는 긴장가운데 공존할 전망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엇이
옳은가’ ‘그러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시기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의 긴장 속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예레미야 선지자의 생각은
중요한 지혜를 남겨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민족적 패망을 목전에 두고,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의 커다란 사회변화를 앞두고 있을 때, 시드기야
왕은 반바벨론 동맹을 결성하여 결사항전을 다짐했고 거짓선지자 하나냐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압제에서
곧 해방될 것이라는 거짓된 희망’을 전했습니다. 정치적 포퓰리즘이
국민들을 호도했고 결국 가혹한 파멸의 길로 내몰았습니다.
이에 반해 예레미야는 국민들이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 갔을
때 ‘거기에서 집을 짓고 텃밭을 만들며, 거기서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라’고 가르칩니다(렘29:5-7)’. 세상 나라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가르치는 교훈이었습니다.
근본적으로 기독교인들에게 세상은 잠시 지나가는 곳입니다(히11:15). 이 세상의 큰 정부,
작은 정부, 좌파나 우파 그 어디에도 그리스도인들의 정착지는 없습니다. 세상의 권력과 세상의 방법에는 그리스도인의 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도자의
눈이 하나님을 향해 고정되어 있을 때(수1:7-9) 그를
따르는 민중은 안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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