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26-31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작가로 유명한 조앤 롤링은 스물 여섯살 시절, 이혼녀에 싱글맘이었으며 런던 거리의 홈리스였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터널 속에 갇혀 ‘지옥’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던 어느 순간, 조앤은 자신이 살아 있고, 사랑하는 딸이 있으며, 멋진 이야기를 엮어 낼 오래된 타자기가 옆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삶에서 비본질적인 것들을 제거하고 자신을 깊이 응시하며 새롭고도 놀라운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순간을 고대 헬라어에서는 ‘에피파니’라고 하는데, 이는 ‘신이 자신을 찾는 이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창세기 1장 27절은 사람에
대해 천명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성경은 사람이 본래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합니다. 사람 안에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위대한 유전자가 숨어 있습니다. 갓난 아기가 엄마의 가슴을 찾아 파고들듯이,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행복과 자유를 느끼는 것이 사람의 본성입니다.
시인 단테는 그렇게 표현합니다. ‘우리 모두는 인생이라는 여정을 떠난
사람들입니다. 이 여정은 자신이 정말 가고 싶고, 떠난 곳을
더 이상 그리워하지 않을 그런 장소를 향해 가는 마음가짐입니다. 그럴 때는 내가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이
방향인 동시에 목적지가 되므로 거기에는 깊은 감동이 있습니다.’
산과 하늘이 보고 싶지 않아서 눈을 감을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산과 하늘이 산과 하늘이 없어지는 건 아닙니다. 우리가 내면의 자신,
하나님의 형상을 바르게 보지 못하게 하거나, 보고 싶지 않게 만드는 것들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 삶의 군더더기들입니다. 우리가 내면의 깊은 곳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형상을 찾아가는 여정은 그 삶의 군더더기들을 덜어내는 과정입니다. ‘우리를 포로 되게
하고, 눈이 멀게 하고, 눌려 있게 만드는 것’들을 덜어내면서 우리는 복음을 만납니다(눅4:18).
인생의 어느 시점에 이르면 외부의 가르침과 환경의 요소를 떠나 스스로 삶의 의미를 추구하고 싶은 욕망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무엇’을 추구하느냐가 아니라 그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왜’ 하는지가 더 중요해지는 시점입니다. 이 때 그 무엇을 빛나게 하는
것은 무엇 자체가 아니라 그 무엇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1969년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면서 화려하게 데뷔한 천재
피아니스트 세이모어 번스타인은 국제적 명성과 연주활동을 이어가다가 1977년 그가 50세가 되던 날 돌연 은퇴를 선언합니다. 그는 어떤 이유인지 한 순간
명예와 돈을 약속하는 화려한 무대를 떠나 침묵의 삶을 살기로 결정합니다. 현재 나이 95세 그는 뉴욕 원룸 아파트의 작은 주방에서 식사를 하고 접이식 침대에서 잠을 잡니다. 피아노 레슨을 하면서 생활비를 벌면서 평범한 노인의 삶을 이어갑니다. 왜냐하면
음악이 그에게 명성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찾아가는 과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침묵과
공허로 가득한 자신만의 심연에서 음악을 통해 거룩한 길을 묵묵히 걸어갑니다.
미켈란젤로는 그런 말을 남겼습니다. ‘내 손에는 정과 망치가 있다. 나는 이 커다란 돌에서 쓸데없는 것들을 덜어낼 것이다.’ 성경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에서 ‘창조하다’에 해당하는 ‘바라’라는
단어는 ‘더 이상 덜어낼 게 없는 가장 경제적이며 단순한 모습으로 만들다’라는 의미가 있고 ‘조각하다’라는
말과 가깝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창조는 조각의 행위로 묘사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완전함에서 무언가를 덜어 내심으로 인생의 아름다움을 지으셨습니다(창1:31). 우리의 삶에서도 무언가를 덜어냄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삶의 군더더기를 덜어내는 행위가 경건이며 인간 내면의 깊은 곳에서
만나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거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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