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1-4

어느 날 시골 병원 원장의 오랜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의사가 되어 국경 없는 의사회에 지원을 했고, 내전지역으로 의료봉사를 하러 떠나면서 소식이 끊겼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마지막 갔던 봉사지역에서 폭탄이 터졌네같이 갔던 동료들이 전부 죽었는데 난 이상하게 눈물이 나지 않았고, 그냥 화가 났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긴걸까. 내가 뭘 잘못했는데. 사람들이 싫어지고 무서워졌네. 분명히 시작은 이게 아니었는데아무래도 난 길을 잃은 것 같네…’

저 또한 인생 중 아프리카 선교사로 섬겼던 기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와 인류 공익을 위해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분연히 일어났던 그때의 마음은 간 곳없이 희석되어 없어지고 어디서인지 길을 잃어버린 느낌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어떤 아름다운 가치들을 인생 목표로 세우고 젊고 고운 시간들을 쏟아부었던 모든 일들이 그저 보람이 있었어라는 한 마디의 추억으로, 한 장의 빛 바랜 사진만 남겼을 뿐, 저도 때로는 왠지 사람들이 싫어지고 무서워질 때가 있었습니다. 목회도 하던 일이니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서 꾸역꾸역 이어가는데 어느 좌표에 서있는 건지 감이 없고, 어디선가 길을 잃은 듯한 마음이 들 때가 있었거든요.

누가복음서의 수신인 데오빌로는 고위 공직자의 신분으로 기독교 초심자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신앙이 네로 황제의 박해라는 가혹한 시련을 겪게 되었고 다양한 외부 요소로 인해 길을 잃을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게 되었지만, 반기독교적 사회에서 기독교인으로 남기 위해 치러야할 대가가 너무 크다고 판단이 될 때, 사람들은 당연히 주저하게 마련입니다. 가치관이 충돌하는 시점인 거지요.

때로는 우리가 길을 잃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바른 목표를 가지고 출발했지만 중간에 목표의식이 흐려지고 방향이 바뀔 때, 내가 지금 엉뚱한 길에 있는 듯한 패배감이 옵니다. 올바른 방향으로 출발했지만 기대했던 것 보다 끝이 너무 길고 보이지 않을 때 의심이 찾아옵니다. 목적지가 눈 앞에 있는 듯한데 과연 내가 희생하고 버린 것들보다 가치가 있었는가하는 혼동이 올 때 자괴감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누가복음에는 데오빌로를 포함해서 길을 잃기 쉬운 사람들 혹은 그런 주제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귀족과 가난한 자들, 부자 아버지와 탕자 아들, 부자와 나사로, 등 귀족과 천민, 부자와 빈자, 정의와 불평등의 문제들이 같은 이야기에서 대립하는 주제로 등장합니다. 이 긴장 속에서 누가가 그리는 복음의 지도는 무엇일까요?

누가복음에는 분명히 사회의 취약계층,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깊은 관심과 복음이 담겨 있지만, 누가복음의 메시지는 사실상 가난한 자가 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가난한 자가 되었을 때 경험하는 하나님의 신비에 대해 전한다고 표현이 맞습니다. 이것이 누가가 담고 있는 가난의 복음입니다. 물질적으로 부자나 빈자의 문제나, 사회적으로 귀인과 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 내면 깊은 심연에는 빈자가 자리하고 있는데 누가복음의 관심은 거기에 있습니다. 거기에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과 치유와 구원이 있습니다. 길을 잃은 사람들이 길을 찾아가는 모습, 누가복음이 그리는 복음입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본토 아비 집을떠났을 때 그는 비로소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누가 또한 사회이 귀한 자가 아니라 빈한 자가 되었을 때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친구 데오빌로에게, 아니 그와 비슷한 모든 처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여정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합니다. 내가 사회의 중심이 되어 있을 때는 알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사회에서 소외된 자가 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내가 약할 때에 나의 약함을 찾아오시는 하나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