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56-80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 가면 ‘켈스의 서(Book of Kells)를 소장한 트리니티 칼리지의 특별 전시관’이 눈길을 끕니다. 이 책은 주후 800년경에 기록된 복음서 필사본입니다. 방문객들은 전시관에 들어설 때, 입구에 배치된 초기 켈트 수사들의 삶, 성경의 일부 내용을 공들여 필사하고 보존하는 작업에 일생을 바쳤던 그들의 인생을 먼저 접하게 됩니다. 수도사들의 경건과 복음서 필사에 대한 헌신에 깊이 빠져 들어 ‘켈스의 서’가 지닌 역사적 무게를 맞이할 준비가 되었을 때 비로소 방문객들은 그 책을 마주하게 되는 거지요.
누가의 복음 이야기도 비슷하게 시작합니다. 만일에 아무런 준비가 없이
단지 ‘마리아가 남편과 동침하기 전에 아기를 잉태했다’고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아마도 사회적 지탄이나 조롱을 피할 수 없었을 겁니다. 메시아의 탄생이라는 초자연적인
신비를 소개함에 있어서 우리를 준비시키는 이 제사장 부부의 이야기에는 중요한 교훈이 숨겨져 있습니다.
제사장 사가랴와 엘리사벳 노부부의 아들 세례 요한의 출생은 당시 실존한 사건이었고 수많은 목격자들이 증언한 사건이었습니다. 가임기를 지난 여성 엘리사벳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초자연적인 잉태’를 하게 되었고, 이 일은 그 남편 사가랴가 제사장으로서 전 국민적
예식을 거행하는 가운데 이루어졌으므로 당시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진 공적 사건이 되었습니다.
이들 노부부의 이야기로 사람들은 훨씬 더 오래전 옛 기억들을 상기했을 것입니다.
노년에 아이를 낳은 아브라함과 사라(창21), 오랜
세월 자식 없이 지내다가 야곱에게 두 아들을 낳은 라헬(창30,35),
삼손(삿13)과 사무엘(삼상1)의 탄생이야기 등입니다.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탄생은 전례 없는 새로운 사건이 아니라, 오랜 세월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하나님의 목적 가운데 분명히 존재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일’임을 누가는 당시 이방 지성인들에게 제시하고 있는 겁니다.
당시 제사장들은 대부분 사두개인들이었고, 그들은 바리새인과 달리 천사의
존재나 몸의 부활을 믿지 않았으므로 사가랴 역시 그러한 교리적 전통을 따르고 있었을 것입니다(행23:8). 그가 전 국민적 예식을 주재하는 자리에서 천사의 출현과 초자연적인 출생 소식을 접한 것은 당연히 기쁨보다는
의심과 두려움이 앞섰을 것입니다.
당시 사회의 모범적인 경건인, 교리를 절대 벗어나지 않는 율법교사, 임무수행에 철저한 제사장, 부부 중 누구도 일탈이 없는 모범 부부, 자식이 없어서 동네 아낙네들의 입방정에 오르내리는 일만 없다면 모든 것이 행복하고 존경받는 부부, 제사장 사가랴와 그 아내 엘리사벳의 인생살이에 커다란 도전이 찾아온 겁니다.
사가랴 인생이야기의 큰 반전은 누가복음 1장 마지막 80절에 있습니다. 사가랴는 자신의 특별한 아들을 ‘빈 들’에서 키웁니다. 빈
들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필사하여 보존하고 엄격한 금욕적 경건 전통을 이어가던 경건주의자들, 에세네파를
의미합니다. 이 변화는 그의 신앙이 의심과 경건이 뒤섞인 모습에서, 이제
굳은 확신가운데 하나님 앞에 완전히 돌아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가랴는 제사장으로 태어나 제사장으로 성장했고 ‘하나님 앞에 의인’이라는 평판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두개인의 교리와 경건의 한계를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자기의 주어진 영적 규칙에 충실한 경건인이었습니다. 이러한 노부부의 일상에 하나님의
신비가 찾아왔을 때, 그는 그 변화를 받아들였고, 메말랐던
노부부의 인생에는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신앙적 타성을 무너뜨리며 찾아오셨고,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오시는 길’을 예비하는 일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0 Comments
댓글 쓰기